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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농사의 시작

달콤 소나기 2020. 6. 2. 12:56

농사의 시작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는 약 기원전 95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밀농사는 인도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시작되었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2500년 경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금은 오창과학산업단지가 들어선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고대 볍씨들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볍씨는 야생 벼가 아닌 재배 벼였다.
서울대학교의 방사선탄소연대측정 실험과 미국 지오크론시험소 유전자 분석결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 1만 5000년 전의 볍씨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왔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보다 3천년이나 앞선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곧 한반도의 쌀농사가 중국보다 3000년이나 앞서 시작된 것이다.

쌀농사가 세계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크다. 농경을 위한 마을 공동체가 빨리 정착되었을 뿐 아니라 한반도가 곡창지대라는 뜻이다. 밀농사와 달리 쌀농사는 까다롭다. 기후, 수량 등 천혜의 조건이 맞아야 한다.
그 만큼 인간이 살기에 좋고 농경 조건에 적합해야 한다. 서양에서도 쌀농사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낙차가 크지 않은 포강이 흐르는 밀라노 인근
롬바르디 평야의 곡창지대였다.

한반도에서 세계 최초로 이루어진 쌀농사는 가족농과 씨족 체계의 형성발전에도 큰 관련이 있다.
모내기와 벼 베기, 물 관리 작업에 있어 두레와 마을 등 공동체가 형성된다. 쌀농사의 규모가 커지면 물 관리와 관개시설이 필수다. 동양에서 치수는 곧 정치였다.

고대 한국이 이러한 씨족 공동체의 발달과 사회 형성 그리고 치수사업으로 고대국가의 등장도 주변에 비해 빨랐을 것이다.

환인, 환웅, 단군을 신화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모시고 나와야 하는 이유이다.

고조선이 부족연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에도 최초로 세습이 시작된 중국의 하 왕조 보다 100년 앞서 왕조가 시작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본격적인 정치조직인 고대 왕국은 농경의 시작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수로와 저수지 등 관개시설 건설과 다리 등을 놓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인력 동원이 필요했으며, 많은 인력이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정치조직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고대 봉건국가에서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가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이자 왕의 업적이 되었다. 중국 사료에도 동이족은 예로부터 치수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도 물길을 잘 다스린 것으로 알려진 요와 순 임금이 모두 동이족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