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생활정보

태평양전쟁과 오키나와전투

달콤 소나기 2020. 6. 6. 21:50

일본군의 두 장군이 자살하기 직전인 6월 21일 오후 1시, 가이거 장군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의 조직적 저항이 끝났으며 점령이 이루어졌다고 공식 선언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국기 게양식이 열렸다. 일본 대본영도 25일에는 오키나와 상실을 공식인정하고 본토 결전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에도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었고 아직 1만 명 이상의 일본군이 남아 있었다. 23일부터 게이거에게 지휘권을 인수받은 스틸웰 장군은 그날부터 열흘 동안 소탕전을 시작했다. 제1해병사단은 봉쇄 임무를 맡고, 제6해병사단과 육군이 소탕전을 수행했다. 이 기간에 9천 명에 가까운 일본군이 전사했고 이례적으로 3천 명이 넘는 일본군이 포로로 잡혔다. 7월 2일, 스틸웰 장군은 오키나와 전투의 공식 종결을 선언했다.

미군이 이 전투에서 입은 피해는 태평양 전쟁의 모든 전투를 통틀어 최대 규모였다. 제1, 제2, 제6해병사단과 해병 항공대는 전사자 및 실종자 2,938명, 부상자 1만 3,708명의 인적 손실을 입었으며 그 외에 전투 피로와 신경증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1만 598명에 달했다. 이 중에서 제1해병사단의 피해만 계산하면, 전사자 1,115명, 실종자 41명, 부상자 6,745명 그리고 비전투 손실이 5,101명이었다.

육군은 전사자 및 실종자 4,675명, 부상자 1만 8,099명, 비전투 사상자 1만 5,613명의 손실을 입었고, 해군은 주로 가미카제 공격으로 전사자 4,907명, 부상자 4,824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36척의 함정을 잃었다. 전사자 숫자가 1만 명이 넘는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 오키나와 전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일본군의 손실은 훨씬 커서 거의 10만 명이 전사하고 7,401명이 포로가 되었다. 또한 수천 대의 항공기를 잃었으며 초전함 야마토(大和)를 비롯한 16척의 함정이 격침되었다. 무엇보다 본토인 규슈에서 56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큰 섬을 미군의 기지로 내주게 된 것은 커다란 전략적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나라 군대 사이에서 죄 없이 죽은 오키나와 인들의 숫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최소 4만 2천 명, 최대 15만 명 사이의 숫자들이 언급될 뿐이다. 그래도 해병대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점령한 오키나와를 지금까지 기지로 사용하고 있으니 보람이 있었지만 이 기지로 줄곧 피해를 입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만이 문제인데, 집권당인 자민당은 최근 총선에서 전국적인 승리에도 오키나와에서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즉 주민들의 절대 다수는 해병대의 철수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1해병사단의 병사들은 휴양을 위해 본토는 아니더라도 하와이로 가기를 원했다. 이때 대원들은 스스로를 ‘너덜너덜한 엉덩이’라고 표현했는데, 2년 전 호주를 떠난 후 줄곧 노숙해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델 발레 사단장도 동의했기에 파부부 섬에 남아 있던 후방 지원 부대는 휴양을 준비하기 위해 하와이로 떠났다. 마지막 병사가 배에 올랐을 때, 수백만 마리의 게와 쥐들이 부두로 몰려들어 이 섬이 해병대가 점령하지 못한 유일한 섬임을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일본 본토 침공을 위해 오키나와에 남아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나마 11월 1일에 시작될 예정인 규슈 상륙 작전에서는 빠졌지만 1946년 3월 도쿄 부근에 상륙하는 코로넷(Coronet) 작전 투입이 결정되면서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단은 섬 북쪽으로 주둔지를 옮겼는데, 섬은 그사이에 새로운 비행장과 넓은 도로, 창고, 병원, 건물 등이 속속 건설되면서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부하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델 발레 장군은 아쉬운 대로 사단에서 30개월 이상 복무한 장병 800명을 본토로 돌려보냈다. 위문공연단의 쇼가 자주 열렸지만 병사들은 묵시록적 공포에 빠져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모두가 도쿄 앞으로 상륙한다면 결과는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해병도 쪽바리도.”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발의 원자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해병대가 상륙전을 치른 섬들, 과달카날과 타라와, 사이판, 괌, 펠렐리우, 이오지마, 오키나와는 훗날 상륙함들의 이름이 된다.

'그룹명 >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마디즘(Nomadism)  (0) 2020.06.06
체코 프라하 카를4세  (0) 2020.06.06
조현병은 무엇인가?  (0) 2020.06.06
삼수갑산 유래  (0) 2020.06.06
펨토 초 시간  (0) 2020.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