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문학사상 안정효 번역 연재작품,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안정효선생의 번역이 훌륭한점도 있었지만 이 소설을 탐독하면서 우선 화려한 문체에 충격을 받았다. 문체를 가지려고 노력하던 시기여서 한국어로도 이런 문장 구조를 만들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전율했다. 이 충격에서 벋어나지 못한 나는 이 소설 때문에 소설 쓰는 일을 포기했다.
족장의 가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 않다^등 그의 작품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란 종교적 몽상과 전설과 머리속의 복잡한 착란까지도 포괄적인 사유의 세계라는 인식을 깨우치게 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의 노벨상 연설문을 발견해서 소개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마젤란과 함께 최초로 세계를 일주했던 피렌체 출신 항해자 안또니오 삐가페따는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아주 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연대기를 썼지만, 그 연대기는 상상의 모험을 하고 쓴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등에 배꼽이 있는 돼지들을 보았으며, 암컷이 수컷의 등 위에서 알을 품는, 다리 없는 새들을 보았다고 썼습니다. 또한 주둥이가 숟가락 같은, 혀가 없는 펠리컨들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노새 머리와 귀를 갖고 낙타 몸과 사슴 다리를 한 채 말처럼 울부짖는 괴상한 동물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빠따고니아에서 맨 처음 만난, 몸집이 거대한 원주민에게 거울을 갖다대자 흥분한 원주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이성을 잃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싹을 엿볼 수 있는 이 짧고 멋진 책은 그 당시 우리 현실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일 뿐입니다. 이것 외에도 라틴아메리카 연대기 작가들은 우리에게 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남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욕심을 냈던, 환상의 국가 엘 도라도(El Dorado)는 지도학자들의 환상에 따라 장소와 형태를 달리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지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신화적 탐험가 알바르 누녜스 까베사 데 바까는 영원한 불로(不老)의 샘을 찾아 8년간 멕시코 북부 지역을 탐험했는데, 광적인 호기심으로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탐험대원들은 서로를 잡아먹었습니다. 결국, 탐험을 시작했던 600명 가운데 다섯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결코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미스터리들 가운데는, 아따우알빠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등에 각각 금 100파운드씩을 싣고 꾸스꼬를 떠난 11,000 마리의 노새가 단 한 마리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 후 식민 기간 동안, 꼴롬비아의 까르따헤나에서는 홍수가 빈발하는 지역에서 키운 암탉 몇 마리가 팔리고 있었습니다. 그 암탉들의 모이주머니에는 작은 금덩이들이 들어 있었다고들 합니다. 황금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이런 광증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따라다녔습니다. 지난 세기에 파나마 지협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 연구 책임을 맡은 독일 사절단은 레일을 그 지역에서는 귀한 금속인 철이 아니라 흔한 금으로 만든다면 그 계획은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페인 지배로부터의 해방도 우리를 광기에서 해방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멕시코에서 세 번에 걸쳐 독재를 자행했던 안또니오 로뻬스 데 산따 아나 장군은 ‘파이 전쟁’이라 불린 전투에서 잘려 나간 오른 다리를 화려한 장례식을 치러가며 매장했습니다. 절대군주로 16년간 에꾸아도르를 통치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모레노 장군의 장례식은 시체에 정복을 입히고 훈장을 흉갑처럼 주렁주렁 매달아 대통령 의자에 앉혀 놓은 채 거행되었습니다. 30,000명의 농민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엘 살바도르의 접신론자 폭군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띠네스 장군은 자기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진자 모양의 특수한 도구를 고안해 냈고, 언젠가는 성홍열을 퇴치시키기 위해 가로등을 빨간 종이로 감싸도록 했습니다. 떼구시갈빠 중앙광장에 우뚝 서 있는 프란시스코 모라산 장군의 동상은 실제로는 파리의 중고 조각품 창고에서 구입한 네이 제독의 것입니다.
11년 전 우리 시대의 고명한 시인 가운데 하나인 칠레의 빠블로 네루다는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분위기를 자신의 언어로 표출해 냈습니다. 선의를 품은, 때때로는 악의를 품은, 유럽인들은 그때부터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맹렬한 기세로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이런 기괴한 뉴스들을 전파시켰습니다. 광대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정신나간 남자들과 역사에 남을 여자들이 즐비한, 그들의 완고함이 전설과 혼동될 만한, 거대한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대통령궁에서 버티던 프로메테우스 같은 어느 대통령은 혼자서 군대 전체와 싸우며 숨을 거두었고, 수상하기 짝이 없지만 아직도 그 원인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두 번의 비행기 사고는 위대한 마음을 지닌 다른 지도자의 목숨과 민중의 명예를 복구시켰던 민주적인 한 군인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다섯 번의 전쟁과 열일곱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우리 시대에 처음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민족을 학살한 악마 같은 독재자도 출현했습니다. 그 동안 2천만 명의 라틴아메리카 어린이들은 채 두 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이 숫자는 1970년 이후 유럽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수를 상회하는 엄청난 것입니다. 정치 탄압으로 실종된 사람은 12만 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스웨덴 웁살라의 모든 시민이 실종된 것과 같습니다. 임신한 채 체포되어 아르헨띠나 감옥에서 아기를 낳았던 수많은 여인들은 군사정권에 의해 비밀리에 입양되었거나 어느 고아원에 수용되었을 자기 아이들의 행방도, 얼굴도 모릅니다. 이런 모든 불합리를 막아보겠다는 소망으로 거의 20만 명에 가까운 남녀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죽었고, 10만 명 이상이 중미에 있는 작지만 자생적인 나라 니까라구아, 엘 살바도르, 구아떼말라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만일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본다면, 4년간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백만 명 당 6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친절을 전통으로 간직한 나라 칠레에서는 인구의 12퍼센트에 해당하는 백만 명이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인구 2백 50만을 지닌 작은 나라이지만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문명화된 나라로 여겨졌던 우루구아이에서는 다섯 명당 한 명 꼴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엘 살바도르 내전은 1979년 이후 거의 20분에 한 명 꼴로 피난을 가게 만들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로부터 강제로 이주했거나 망명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노르웨이보다도 더 많은 인구를 가질 것입니다.
금년에 내가 스웨덴 아카데미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 약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특이한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 현실은 종이 위에 씌어진 현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매일 헤아릴 수 없이 죽어 가는 우리의 매순간을 결정짓는 것이고, 또 비참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고갈되지 않는 창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는 하나의 샘을 지탱하는 것인 바, 그 샘은 단지 운이 좋아 가장 많은 표를 얻게 된, 향수병에 걸린, 방황하는 이 꼴롬비아인의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특이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들, 시인과 거지들, 음악가와 예언자들, 전사(戰士)와 악당들에 대해 상상력을 요구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대의 적은 우리의 삶을 믿게끔 만들 수 있는 전통적인 수단이 불충분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고독의 핵심입니다.
만일 이런 어려움들이 우리, 즉 그 어려움들의 정수(精髓)인 우리를 무디게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문화를 보면서 황홀경에 취해 있는 서구의 이성적 재능이 우리를 해석하는 데 가치 있는 도구를 갖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들이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은 채, 또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그들이 그랬듯이, 너무나 아리고 피비린내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은 채, 그들이 자신들을 재는 동일한 잣대로 우리를 재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만 합니다. 우리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고, 갈수록 우리를 덜 자유롭게 하며, 갈수록 우리를 고독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아마도 존경스런 유럽이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우리를 보려 노력한다면 유럽은 타자로부터 더 많은 이해를 받을 것입니다. 런던이 첫 성벽을 건설하는 데 30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며 주교를 갖는 데 또 다른 300년이 걸렸고, 로마는 에트루리아 왕이 자신의 나라를 인류 역사 속에 이식할 때까지 20세기 동안이나 불확실성의 암흑 속에서 몸부림쳤으며, 부드러운 치즈와 아주 정교한 고급 시계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오늘날의 평화 민족인 스위스인들은 16세기에는 용병으로서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심지어는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도 로마 제국 군대의 돈을 받고 고용된 12,000명의 독일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하고 유린했으며, 8천 명의 로마 주민들을 칼로 찔렀습니다.
나는 토마스 만이 53년 전에 바로 이 장소에서 찬양했던, 정결한 북(北)과 정열적인 남(南)을 합치고자 한 토니오 크뢰거의 환상을 구체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리가 분명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더 인간적이고 더 정의로운 거대한 조국 하나를 건설하기 위해 이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유럽인들이 자기 식으로 우리를 보는 법을 깊이 수정하는 것이 우리를 훨씬 더 잘 도와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럽인들이 우리의 꿈과 연대를 맺는다고 해도, 그 연대가 세계의 분배 속에서 더욱 고유한 자신의 삶을 갖겠다는 꿈을 지닌 모든 사람을 합법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들과 더불어 구체화되지 않는 한,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는 장기의 말처럼 자유 의지가 결여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되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또 라틴아메리카의 독립과 독창성 추구가 서구의 염원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망상 같은 건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라틴아메리카와 유럽과의 거리를 단축시킨 항해술의 발전은 오히려 우리의 문화적 거리감을 더욱 증폭시켰던 것 같습니다. 왜 서구는 문학에서 진솔하게 우리의 독창성을 인정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추구하려고 힘들게 애쓰는 우리의 노력을 온갖 의심을 품은 채 부인하는 것입니까? 선진 유럽인들이 자신의 조국에 심으려고 노력하는 사회 정의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상이한 조건에 상이한 방법으로 달성할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 점철된 엄청난 폭력과 고통은 수백 년에 걸친 부정(不正)과 무수한 고난의 결과이지, 우리 고향에서 9,0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획책된 음모에 의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럽의 많은 지도자들,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청춘 시절에 지녔던 생산적인 광기를 잊어버린 유치한 할아버지들처럼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마치 세상의 위대한 두 주인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운명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친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우리 고독의 크기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수탈과 포기에 맞서 왔던 우리의 대답은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홍수나 페스트, 굶주림과 대격변, 심지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영원한 전쟁도 죽음을 초월한 끈질긴 삶의 장점을 축소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갈수록 커지고 가속화되는 이점입니다. 매년, 죽는 사람보다 태어나는 사람의 수가 7천 4백만이나 더 됩니다. 이것은 해마다 뉴욕의 인구보다 일곱 배나 많은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태어납니다. 물론 이런 국가들 가운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가장 번영한 국가들은 오늘날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인류뿐만 아니라, 이 불행한 지구에 태어나 살아왔던 모든 생물을 백 번 이상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파괴력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 내 스승 윌리엄 포크너는 바로 이 장소에서 “난 인간의 종말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말일 그가 32년 전에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거대한 재앙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과학적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엄연한 인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스승이 서 있던 이곳에 내가 서 있을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해 단순한 유토피아처럼 보였음에 틀림없는 이런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을 믿는 우화의 창조자들인 우리는 예전 것과 반대인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작업을 실행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결정할 수도 없고, 우리가 죽는 방법도 결정할 수 없는 새롭고 활짝 트인 삶의 유토피아이며, 정말로 사랑이 확실하고, 행복이 가능한 곳이고, 백년 동안의 고독을 선고받은 가족들이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제2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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